대마도 자유여행… 두 바퀴로 만나는 '바람의 섬' 돌을 머리에 인 가옥들… 누워 자란 활엽수
불과 두 시간을 배로 건너왔을 뿐인데, 가을 색 창연한 풍경을 만날 줄은 몰랐다. 아직 단풍을 머금은 풍경 속에서 겨울 외투를 벗었다. 일본이되 한국이 더 가까운 곳, 대마도(對馬島·쓰시마) 얘기다.
대마도는 대개 패키지여행으로 다녀오는 곳이었다. 대중교통이 불편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조금만 준비하면 자유여행 역시 어렵지 않다. 집단의 리듬이 아닌, 자기 고유한 리듬으로 만나는 쓰시마는 색다르다.
추천 코스는 이렇다. 대마도 북부 항구 히타카쓰(比田勝)에 내려 자전거로 해안 도로를 돈다. 다음은 걷기다. 시내버스 타고 대마도 중부로 이동, 아소만(淺茅灣)이 내려 보이는 에보시다케(烏帽子岳) 전망대와 물속 도리이(鳥居)가 신화 속 한 장면 같은 와타즈미 신사(和都多美神社)로 간다. 마지막은 차를 빌려 바람의 나라, 이즈하라마치(嚴源町)를 한 바퀴 도는 것. 대마도 북에서 출발, 리듬을 달리하며 남에서 마무리하는 여정이다. 일본 여행이기도 하고, 때로는 데자뷔 같은 한국 여행이기도 하다.
▲ 와타즈미 신사의 도리이(鳥居)는 바다를 향한다. 만조 때면 2m쯤 잠기고 간조 때 온 모습을 드러낸다. 다시, 바다와 육지 사이에 선 도리이는 바다 너머 경주 서라벌을 바라본다. 와타즈미 신사의 옛 이름은 도해궁, 바다를 건너온 궁이다.
◆자전거로 대마도를 맛보다
대마도, 꽤 크다. 제주도보다 작되 거제도보다 2배쯤 크다. 남북으로 종단하는 데 차로 대략 2시간 30분 거리다. 2박3일 일정을 잡았다면 대마도의 모든 것을 다 보겠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그래야 더 깊이 볼 수 있다.
첫날 히타카쓰 자전거 여행은 대마도 맛보기다. 최근 대마도는 북쪽에 자전거로 돌 수 있는 코스를 세 군데 개발했다. 이 중 히타카쓰 항구를 기점으로 미우다(三宇田) 해수욕장과 한국전망대를 돌아 순회하는 코스가 무난하다.
항구 앞에서 자전거를 빌려 길을 나섰다. 부산에서 49.5㎞ 떨어진 쓰시마는 외투를 벗을 정도로 따뜻했다. 첫 목적지는 아지로(網代)의 연흔(漣痕). 200m 가까운 길이의 해변에 바다의 잔물결을 담은 바위가 펼쳐진 곳이다. 말 그대로 파도의 흔적이 화석으로 남았다.
연흔을 보고 길을 돌아 해안 절벽을 타는 도로 위에 올랐다. 나지막한 경사 끝에 불현듯 파도 소리가 출렁였다. 날씨는 가을이나 바다는 맑은 겨울을 닮아 파도에 흔들리는 물 아래 자갈이 또렷했다. 그 해변도로 끝에 '일본의 해변 100선'에 선정됐던 미우다 해수욕장이 있다. 자갈은 거기서 하얀 모래로 바뀌고 바다 한가운데 오도카니 서 있는 바위 섬이 정취를 더했다.
바닷가의 고요를 즐겼다면, 이젠 한국전망대에 오를 순서다. 한동안 평탄하다 전망대에 다다를 무렵 길은 급격히 가팔라진다.
전망대는 한국과 대마도가 직접 만나는 자리다. 맑은 밤이면 부산이 수평선 너머 반짝이거니와 전망대 자체가 탑골공원 팔각정을 모델 삼아 한국산 재료로 지어져서다. 게다가 전망대는 한때 한국 휴대폰이 터지기로 유명했던 곳. 이날도 SK텔레콤과 KT 네트워크가 잡히긴 했으나 통화가 되진 않았다.
전망대 옆에는 조선역관사 순국비가 서 있으니, 여기서 과거와 현재도 중첩된다. 순국비는 숙종 29년인 1703년 2월 5일 대마도 앞바다에서 풍랑에 휩싸여 죽은 조선 역관 108명을 추모한다.
미우다 해수욕장과 한국전망대는 순회 코스에서 제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일종의 징표다. 그 징표를 나침반 삼아 길을 돌 때, 징표와 징표 사이가 더 흥미롭다. 언덕을 넘을 때마다 마주하는 바다의 안쪽으로는 단정한 일본 마을이 자리 잡고, 바다와 바다 사이 높게 솟은 삼나무 숲이 양쪽으로 도열한다. 바다와 산을 넘나들며 경계를 지우는 매와 까마귀는 특유의 울음소리로 공간의 깊이를 더한다.
▲ 미우다 해수욕장과 한국전망대 사이, 혹은 바다와 바다 사이에 낮게 앉은 마을, 이즈미. 자전거로 달릴 때 대마도는 속깊은 풍경을 보여준다. 터널끝에 마주친 12월의 대마도 풍경.
◆신화의 시대를 걷다
대마도엔 약 3만7000명이 산다. 이 중 2만 명 남짓한 이들이 대마도 남쪽 마을 이즈하라에 거주한다. 많은 유적과 오랜 풍경이 이즈하라에 있으니, 마땅히 히타카쓰에서 이즈하라로 건너가야 하나 그전에 들를 곳이 있다. 와타즈미 신사와 에보시다케 전망대가 있는 도요타마마치(豊玉町)다.
히타카쓰에서 하루 다섯 대 있는 버스를 타고 달리길 한 시간, 한때 진주양식으로 부유했던 마을 니이(仁位)에 도착했다. 바다와 끝을 맞댄 하천 따라 걸으면 이내 오르막이다. 멀리 붉은 도리이가 보였다. 신사 앞에서 속세와 신성(神聖)을 나누는 경계다. 그러나 이 붉은 도리이 앞에 신사는 없다. 신사 대신 신화의 공간, 아소만이 있다.
아소만은 일본에서 가장 복잡한 리아스식 해변 중 하나다. 바다를 넓게 안은 아소만에서, 섬의 구릉은 팔을 뻗어 쥘 수 없는 바다를 향해 손을 펼쳤다. 그 선사(先史)의 풍경 위로 이곳 주민은 진주 양식의 표지인 부표를 널어 바다를 까맣게 수놓았다. 지금의 부표와 선사의 아소만 사이는 신화의 시대다. 이를 증명하는 게 땅과 바다 사이에 걸친 와타즈미 신사다.
해신(海神)을 모신 와타즈미 신사에는 도리이가 다섯이다. 바다를 향해 뻗은 다섯 도리이 중 둘은 바닷속에 서서 만조 때면 2m쯤 물에 잠긴다. 만조 때 젖고 간조 때 마르는 도리이는 바다와 땅, 신화와 현실을 오가는 경계이자 소통의 문이다.
와타즈미 신사의 신화는 한국과도 맞닿아 있다. 도리이는 바다 너머 경주 서라벌을 향한다. 이 신사의 옛 이름이 '도해궁(渡海宮·바다를 건너온 궁)'이란 기록도 남아 있으니, 한반도에서 건너온 신을 모신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신사 너머 에보시다케 전망대는 아소만의 원경을 한눈에 움켜쥘 수 있는 곳이다. 현재에서 신화로, 신화에서 선사의 시대로 거슬러 오르는 길이 여기서 모두 내려다보인다. 이제 다시, 그 길을 따라 현재로 내려갈 차례다.
◆바람의 나라를 달리다
대마도는 일본에 등을 돌리고 한국으로 시선을 향한 형국이다. 대마도 북쪽의 산이 낮게 엎드린 반면, 남쪽 해변은 높은 산이 바싹 압박한다. 길이 가팔라 차를 빌리는 편이 제일 수월하다. 기점은 이즈하라. 24번 현도(縣道)를 타고 대마도 최남단 쓰쓰자키(豆酸崎)를 지나 시계 방향으로 도는 여정이다.
24번 도로는 북쪽과 전혀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삼나무와 측백나무는 군락을 이뤄 힘 있게 수직으로 뻗었고, 사이사이 아직 단풍을 벗지 않은 활엽수가 시린 편서풍에 일제히 수평으로 몸을 뉘었다.
고산을 파고들며, 때론 능선으로 멀리 바라보며 남쪽을 향하면 끝에 쓰쓰자키가 있다. 이곳 풍경은 바람이 조각한다. 바다로 돌출된 쓰쓰자키에선 사방으로 바다가 달려들었다. 조류가 거센 데다 유독 암초가 많아 쓰쓰자키의 앞바다는 하얗게 거품을 물며 절벽으로 치달았다. 바다 한복판에 선 등대와 바다를 내려보고 선 부동명왕 동상만이 그 동적(動的)인 풍경을 매서운 눈으로 지켜봤다. 금강바라밀다보살이라고도 하는 이 동상은 파도를 잠재우는 신이라 했다.
바람에 대처하는 이곳 주민의 자세는 시이네(椎根)에서 확인할 수 있다. 목조 건물에 차곡차곡 돌을 쌓아 지붕을 덮은 창고들이 여기 있다. 너와나 초가로는 겨울 편서풍을 견뎌낼 수 없고 농민이 기와로 지붕을 이는 건 금지돼 있으니, 대신 택한 게 돌이다. 돌 지붕은 대마도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풍경이다. 자기 고유의 리듬으로 속도를 달리하며 만나는 대마도 여행은, 아쉽지만 여기서 끝낸다.
여행수첩
①부산→대마도
대아고속해운이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에서 대마도 이즈하라항·히타카쓰항을 오가는 선박을 운항 중이다. 보통 하루 1회 부산에서 오전 9시 30분 출발하며, 대마도에서는 오후 1시~4시 사이에 출발한다. 부산↔이즈하라항 3시간, 부산↔히타카쓰항 2시간쯤 소요. 기상에 따라 선박 운항 여부나 출발 시각이 달라질 수 있으니 사전 확인 필수. 성인 1인 왕복 15만원. 1544-5117, www.daea.com
②히타카쓰 자전거 여행
히타카쓰 항구에서 직진, 삼거리에 관광안내센터가 있다. 자전거 24시간 대여 1000엔. 0920-86-2212. 아지로의 연흔으로 가려면 관광안내센터를 마주보고 서서 왼편으로 직진. 다시 왼편으로 육교가 보이면 육교 건너 직진. 자전거 순환코스를 돌려면 관광안내센터로 돌아나와 니시도마리→일본해 해전 기념비→미우다 해수욕장→이즈미→도요→한국전망대→와니우라→오우라→히타카쓰순. 거의 외길이라 길이 쉽다. 약 22㎞, 4시간 소요.
③니이 도보 여행
히타카쓰 버스터미널에서 오전 5시 15분, 7시 5분, 8시 40분, 오후 1시 25분, 4시 45분에 대마도를 종단하는 시내버스가 출발한다. 관광객에 한해 하루 버스를 무제한 탈 수 있는 승차권을 1000엔에 판매한다. 0920-86-2362
8시 40분 버스를 타고 오전 9시 55분 니이(仁位)에 도착하면 다음 버스(오후 2시 40분)까지 약 4시간 40분의 여유가 있다. 와타즈미 신사와 에보시다케 전망대를 둘러보기 충분한 시간이다. 니이 터미널에서 왼쪽으로 가면 육교가 보인다. 육교를 앞에 두고 우회전, 마을을 관통하면 끝에 왼편으로 우체국이 있다. 우체국 지나 하천을 오른편에 두고 계속 직진하면 오르막길이 있다. 표지판에 한글로 에보시다케 전망대가 써 있다. 표지판 따라가면 된다. 3시간 30분쯤 소요.
④이즈하라 자동차 여행
니이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대마도공항 입구에서 내린다. 바로 앞에 렌터카 업체가 모여 있다. '자파렌(JAPAREN)'의 경우 소형차 24시간 대여 5670엔. 나중에 이즈하라 항구에서 차를 반납할 수 있어 편하다. 0920-54-2220
공항에서 이즈하라 방향으로 직진, 24번 현도를 타고 쓰쓰→쓰쓰자키→시이네→가미자카공원→이즈하라 순. 대부분 표지판이 한글을 병기했다. 지도와 내비게이션을 같이 확인하면 금상첨화. 약 4~5시간 소요.
대마도에 숙박업소가 모인 곳은 히타카쓰와 이즈하라다. 히타카쓰에선 미우다 해수욕장 인근 대마도 미우다 펜션이 아늑하다. 히타카쓰 도오루 대표이사가 한국말을 잘한다. 4인 1실 1박 1만2000엔. 0920-86-3110, 090-5297-2403
바로 앞에 상대마 온천이 있다. 성인 500엔. 이즈하라에선 호텔 쓰시마가 시내 중심에 있어 다니기 좋다. 싱글룸 6800엔. 0920-52-7711.
이시야키(石燒)와 로쿠베는 대마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토속음식. 이시야키는 달군 돌 위에 날 생선과 조개를 가볍게 구워 먹는 요리요, 로쿠베는 고구마 반죽에서 뽑아낸 짧은 면을 육수에 말아 먹는 요리다. 둘 다 이즈하라 시내에 있는 시마모토에서 맛볼 수 있다. 이시야키 2625엔, 로쿠베 630엔. 0920-52-5252
카스텔라처럼 부드러운 빵에 팥 앙금을 넣은 카스마키 역시 대마도에서 맛볼 수 있는 간식이다. 호텔 쓰시마에서 항구 가는 길에 4대째 카스마키를 만들어온 빵집 에사키타이헤이도(江崎泰平堂)가 있다. 0920-52-0315
이즈하라는 대마도에서 가장 큰 해안도시. 놓칠 수 없는 게 두 개 있다. 일출과 유적 찾아 걷기다. 일출은 대아호텔 앞 공원에서 잘 볼 수 있다. 일본 3대 묘지 중 한 곳인 반쇼인(万松院)과 옛 이즈하라 성문 고려문, 덕혜옹주 결혼봉축 기념비, 조선통신사비, 대마도역사 민속 자료관, 최익현 순국비 등이 이즈하라 시내에 있거나 가깝다.
여행사 여행박사에서 자유여행 상품을 판매한다. 1박2일 상품 14만9000~18만9000원, 2박3일 21만9000원. 숙박·왕복승선권 포함. 070-7012-7044, www.tourbaks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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